현대 엘리트론에서 수정적 다원주의와 신보수주의(6)
9. 스트라우스 엘리트주의
스트라우스는 정치 체제에 대해 플라톤적인 전통에 기반을 둔 매우 엘리트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는 고전 철학자들이 인간의 완전성을 추구하는 형태를 칭찬하며 최선의 레짐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최선의 레짐은 최고의 인간들이 습관적으로 통치하는 것, 즉 귀족정이다. 선은 지혜와 동일하지 않더라도 하여튼 지혜에 좌우된다. 즉 최선의 레짐은 현자의 지배인 것 같다.(Strauss, 1953)’ 물론 소수의 현자들이 다수의 현명치 못한 시민들을 강제로 통치할 수 없다는 것을 스트라우스도 인지하고 있었기에 현실적 해결책으로 그는‘지혜와 동의의 요건을 조화시키는 것’에서 찾고 있다.
사실 이러한 엘리트주의적 관점은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우선시하는 보수주의적 정치 이론 전반에 나타나는 지극히 평범한 현상이다. 그러나 스트라우스는 단순히 엘리트주의적 성향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한 발 더 나아가 가시적으로 보면 오히려 위선적으로까지 보이는 엘리트의 이중적 역할을 찬양한다. 다시 말해 그는 한편으로는 엘리트는 민중들에게 그 사회가 기초하는 도덕과 정의를 열정적으로 전파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엘리트 스스로는 은밀하게 모든 진리란 사실상 그 사회의 지배적 엘리트의 생산물임을 자각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그는“지배권을 행사하기 적합한 인물은 이 세상에 도덕이란 존재하지 않고 더 우월한 자가 열등한 자를 지배할 권리인 자연권만이 유일하다는 것을 자각하는 자”라고 공언하고 있다.
비록 신보수주의의 부상으로 스트라우스는 전 세계 온갖 신문에 등장하는 유명 인사가 되었지만 그는 이러한 엘리트의 이중성에 대한 신념에 입각하여 평생을 은밀한 밀교적인 가르침에 복무하였다. 레오 스트라우스와 그의 제자 블룸 등 스트라우스주의자들의 엘리트주의가 가장 극명히 드러나는 것은 예외적 상황에서의 불가피한 선택으로서가 아니라 노골적으로 선의 승리와 체제의 유지를 위하여 엘리트의 거짓말의 미덕을 찬양하였다는 점이다. 미국의 실제적인 사례로 과거 조작과 음모로 몰락한 닉슨 전 대통령의 고뇌에 윌리암 크리스톨을 비롯한 신보수주의자들이 공감하였던 것이나 또 다른 신보수주의자인 아브람스가 레이건의 이란 콘트라 스캔들에 연루되어 불법과 거짓말로 기소된 것은 이와 관련이 된다.
또한 이후 윌리암 크리스톨이 깅그리치 하원의장과 함께 진위가 의심되는 정보에 입각해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politics by other means)로 집요하게 클린턴 탄핵을 주도했던 양태는 결코 우연만으로 보기는 어렵다. 크리스톨을 비롯한 신보수주의자들은 이러한 극단적인 엘리트주의의 전통에 입각하여 사회를 지배하는 신화 혹은 관념을 만들어 내고 이를 전파하는 지식인의 역할에 특별히 큰 의미를 둔다. 이들에게 있어 지식인은 필연적으로 타락할 운명을 가지는 근대성의 내재적 경향에 맞서 싸울 중요한 전사의 역할이 부여된다.
그들이 194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진보적 엘리트만이 거의 장악해 온 미디어 매체와 연구소의 경향을 1970년대 후반부터 완전히 역전시키는 데 성공한 것은 이러한 강렬한 신념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결국 그들은 지식인의 역할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자신들의 사회 속 영향력을 획기적으로 확대하였다. 예를 들어 윌리암 크리스톨이 주간으로 있는『위클리 스탠다드』지는 부시 행정부의 체니 부통령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이 가장 애독하는 신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부시 행정부에 들어와서 이러한 거짓의 미덕을 찬양하고 대중적 신화를 창출하는 엘리트의 역할이라는 스트라우스주의의 관점은 대량 살상 무기를 둘러싼 공방으로 극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2003년 5월 그간 전쟁의 핵심 명분으로 작용해온 이라크에서의 대량 살상 무기가 발견되고 있지 않자 울포위츠 부장관은『베니티페어』(Vanity Fair)지와의 인터뷰에서 무심코 대량살상무기는“단지 관료적 구실이다.
그것은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유일한 명분이기 때문이다”라고 실토하고 있다(Mason, 2004). 이러한 스트라우스의 수제자의 언급은 위에서 스트라우스가 지식인의 조작적 역할의 미덕을 언급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스스로 이를 미덕으로까지 인지하고 있기에 울포위츠는 규범적으로 큰 거리낌 없이 이러한 위험한 발언을 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울포위츠 발언 이후 더 한층 스트라우스주의의 부정적 영향이 드러난 것은 대량 살상 무기 정보 수집 과정에서 의도적인 정보 왜곡에 대한 스캔들이 불거지면 서부터이다. 세이모어 헐쉬『뉴요커』(New Yorker)지 기자는 5월 기사에서 체계적으로 정보 왜곡을 주도해온 국방부 대량 살상 무기 정보 수집 팀에 대한 기사를 다루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 팀의 국장이 바로 스트라우스주의자이며 신보수주의 성향을 보이는 아담 슐스키라는 것이다. 그는 한때“레오 스트라우스와 정보세계(Leo Strauss and World of Intelligence)”라는 정보 보고서에서 은폐와 기만의중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지난 2004년 대선 기간 부시 진영은 CIA가 백악관 측이 대량 살상 무기 정보 왜곡을 주도했다는 정보를 흘리면서 심각한 갈등을 빚은 바 있다. 최근 새로이 재선에 성공한 부시 대통령은 선거 기간 백악관을 곤경에 빠뜨리는 것을 주도한 CIA 주요 인물들에 대한 대대적 숙정을 감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의 이러한 기도가 완성된다면 부시 2기의 정보 신경망은 언제든지 정권 엘리트들의 입맛에 맞는 정보를 제작해낼 준비가 갖추어질 것이다.
이처럼 스트라우스 엘리트주의는 앞서 설명하였던 신엘리트론에 정치권력의 두 가지 얼굴에 대해 많은 부분 동조하고 있다. 스트라우스 엘리트주의는 보수주의적 입장에서는 엘리트가 사회 전반을 위해 정치적 이중성에 근거한 행동들이 현재의 상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데 적합한 이론이겠지만 앞서 등장하였던 살상 무기 정보 왜곡과 같은 상황들은 엘리트들이 사회의 안정을 위해 무작정 감추고 숨긴다고 해서 나아질 것도 없으며 오히려 나중에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었을 때 더욱 큰 혼란을 가중시키는 문제를 빚는 폐단도 자주 발생하는 것 같다. 지금까지 살펴본 스트라우스의 엘리트주의는 보수주의를 기반으로 후에 등장하는 신보수주의에 있어 주요한 이론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다음으로 신보수주의에 등장배경과 구체적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