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엘리트론에서 수정적 다원주의와 신보수주의(7)
10. 신보수주의
신보수주의자들은 이념의 힘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외교 정책의 성패도 국내의 도덕논쟁의 승리에 좌우된다고 믿고 꾸준히 학계와 연구소, 언론 등에서 세력을 확장하려고 노력했다. 현재 신보수주의자들의 득세에는 9/11이라는 계기도 중요하게 작용했지만 그들의 꾸준한 세력 확장 노력이 결실을 보았다고 보는 것이 진실과 더 가까울 것이다. 그렇다면 신보수주의자들의 이념과 철학은 어떤 기반 위에서 형성되어서 발전해왔는가? 보통 신보수주의자들을 1세대와 2세대로 구분하는데 1세대에 속하는 인물로는 어빙크리스톨, 노먼포도레츠, 진커크패트릭(JeaneKirkpatrick), 대니얼모이니핸(Daniel Moynihan) 등이 있고, 2세대에는 울포위츠, 윌리엄크리스톨, 루이스리비, 게리슈미트, 에이브럼셜스키. 레온카스, 로버트케이건 등이 있다.
그런데 양 세대 간에는 분명한 이념적 차이점이 존재한다. 1930·40년대 사회주의를 포용하는 진보적 이념에서 출발해서 스트라우스, 니버, 아렌트, 트로츠키주의 등 다양한 지적 전통 속에서 자신들의 사상을 형성시킨 1세대신보수주의자들은 미국의 국내외 문제에 대한 나름대로 일관된 철학적, 사상적 기반을 확립 하려고 노력했으며 미국의 국가이익에 따라 개입여부를 판단하는 비교적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원래 공화당의 전통 속에서 성장하여 자신을 신보수라기 보다는 공화당보수 본류로 여기는 2세대 신보수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정책에 일관된 철학적 근거를 마련하는데 별로 관심이 없고 매우 권력 지향적이며 진보진영에 지극히 비타협적이다. 신보수주의의 원류는 1930년 뉴욕에서 유태계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문필가 집단에서 출발했다. 이들은 경제공황을 계기로 뉴딜자유주의에 경도되었으며 소련에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스탈린체제의 전체주의적 속성과 이를 제대로 비판하지 못하는 미국 내 진보주의자들에 대한 환멸을 느끼게 되면서 반공주의로 전환하게 된다.
그러나 전통적 보수주의와는 달리 뉴딜식 복지국가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과 공동체에 대한 책임의식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1960년대 들어서 복지정책이 문제점을 드러내고 베트남 전쟁을 계기로 학생운동이 격화된 것에 우려를 가지게 되었고, 70년대에는 카터의 낙관주의적 외교정책이 소련의 위험성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한 이들 자유주의적 반공주의자들은 민주당과 자유주의로부터 서서히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1세대 신보수주의자들이 본격적으로 세를 얻게 된 계기는 레이건 정부의 등장이었다. 그러나 이는 신보수주의자들에게 기회이면서 동시에 위기였다.
레이건 정부의 등장과 더불어 신보수주의자들은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당적을 옮기게 되었고 강한 반공주의를 주장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힘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1985년 이후부터 고르바초프의 개혁, 개방 정책과 더불어 새로운 대소 정책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신보수주의 내부에 분열이 생겼다. 소련에 대한 더욱 강한 압박을 주장하는 포도레츠 같은 철저한 반공주의자들의 입지가 좁아지고 어빙크리스톨 같은 현실주의적 신보수주의자들이 힘을 얻게 되었다. 1989년 이후 소련과 동구권의 붕괴는 반공주의를 매개로 하나로 묶였던 신보수주의의 해체와 이들이 전통적 보수주의와 결합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위기를 맞아서 어빙크리스톨은(National Interest)를 창간하여 대외정책에 대한 발언권을 높이려고 시도했고, 윌리엄 크리스톨이(Weekly Standard)를 창간한 이후부터는 2세대 신보수주의자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1세대 신보수주의자들이 주로 문필가로 활동한 것에 비해 2세대는 국방부나 국무부내의 주요직책을 차지하여 외교정책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을 선호하며, 일관되게 미국의 강한 힘에 힘입어 일방주의 정책을 주장한다. 또한 그들은 1세대와는 달리 철학적 기초가 약한 대신 후원금 확보와 대중매체 활용능력에서 탁월한능력을 발휘함으로써 담론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 때 PNAC 활동에 참여한 신보수주의 그룹이 부시 외교 안보팀에 대거발탁이 되었으며 9/11을 계기로 이들의 영향력이 더욱 확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