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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Plato](B.C.427-347)

뉴즈'S 2021. 5. 3.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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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이데아론으로 유명한 플라톤은 당대 아테네의 명문 귀족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아리스톤은 아테네 왕가의 후예이며 어머니는 위대한 정치가 솔론의 후손이다. 명문 귀족의 집안에서 귀족으로 자라난 플라톤의 생애는 크게 나누어 네 개의 시기로 구분하여 보는 게 일반적이다.

1기는 (B.C.427~399)까지이며, 이는 그의 청년기에 속한다. 청년기의 플라톤은 아테네의 청년으로서 교육을 받았고, 특히 문학과 과학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플라톤의 꿈은 정치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정치수업 중 20세 때 길거리서 소크라테스 강연을 듣고 감명 받아 제자가 되어 8년간 철학 공부하였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매우 존경하였고, 그러한 소크라테스의 사상과 철학이 플라톤에게 강렬한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그 같은 사실은 그의 저작을 통해서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 이 시기에 있어 플라톤에게 중대한 사건은 소크라테스의 사망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소크라테스로 하여금 음독 사망케 하였다. 이것이 플라톤에게 준 충격은 매우 컸었다. 이를 계기로 민주주의를 경멸하고, 정치가의 꿈을 접고 스승의 가르침을 후세에 전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2기는 (B.C.399~387)까지로 이 시기를 편력기라 부른다. 소크라테스가 사형 당한 이상 수 제자였던 그의 안전도 이제 더 이상 안심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그는 아테네에서 도망쳐 나와 방랑의 길을 떠나게 된다. 아테네에서 빠져 나온 뒤 마흔 살이 될 때까지 플라톤이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기록은 별로 남아있지 않다 처음 3년간은 친구들과 함께 그리스 북부의 메가라에 머물렀고 이후 이집트, 이탈리아 등을 여행했다는 정도의 이야기만이 전해진다. 그러나 이시기에 플라톤은 피타고라스학파 테오도로스와 같은 수학자들을 만나며 그의 유명한 이데아(Idea)론을 발전시켰다 이제 그는 소크라테스가 추구했지만 명확하게 정의 내릴 수 없었던 절대적 진리를 이데아로 구체화 시켰던 것이다. 또한, 플라톤은 메가라에서 당시 일반적인 저작방법이었던 대화형으로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집필하기 시작하였다. 시라쿠사에서 후일 그의 제자가 된 디온(Dion)을 만난 것은 플라톤의 말기에 중대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3기는 (B.C.387~367)까지의 20년간이며, 플라톤으로서는 40세에서 60세까지에 걸친 시기가 이에 속한다. 이 시기는 그의 생애 중에서 가장 알려지지 않은 시기이기도 하다. 그 중 그의 사상에 감명을 받은 시라쿠사 참주인 디오니소스1세의 처남인 디온이 플라톤을 자신의 나라로 초청한 것이다. 그는 이 기회를 이용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참주에게 주장했다. 내용 중에는 디오니소스 1세가 왕의 전제군주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라고 묻자 플라톤이 아주 비겁자입니다. 왜냐하면 목숨을 두려워하기를 이발사의 면도칼을 두려워하는 자와 같습니다. 라고 대답하자 왕이 격분하여 그를 죽이려 하였으나 왕의 처남 디온이 간하여 추방당하는데 그쳤다.’ 그 후, 플라톤은 정치적으로 좌절된 그의 꿈을 철학과 교육을 통해서 구체화하려고 하였다. 그는 그의 학교 아카데메이아(Akademeia)를 창설하고 조직적인 교육을 실시하였다.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는 유럽에 있어 대학의 전통은 여기에 그 시원을 두고 있다. 그의 이상국가론은 아카데메이아의 이념을 구현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는 최고의 학문을 배운 자는 국가에 봉사하기 위해서 상아탑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며, 또 그들은 최대의 의무를 지고 있다는 것이 플라톤의 사상이었다.

4기는 (B.C.367~347)까지이며 이 시기는 그의 말년에 속한다. 그의 나이로는 60세에서 80세까지이며, 디오니소스 1세가 죽고, ‘디온은 플라톤을 초청하여 방탕생활을 하고 있는 디오니소스 2세를 철인지배자로 교육시키고자 해서 그 스승인 플라톤을 초청하였다. 그러나 청년 참주 디오니소스는 철학에는 많은 관심을 표하고 있었으나, 디온과 플라톤이 자기를 축출할 음모를 꾸민다고 느낀 나머지 디온과 플라톤을 시라쿠사에서 추방하고 만다. 그리하여 플라톤은 아테네로 돌아오고, 시라쿠스 여행은 그가 마음속으로 염려했던 바와 같이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끝으로, 기원전347년 플라톤은 일흔 여섯 살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또한, 결혼도 하지 않아 자식도 없어 그의 생애에 관한기록은 플라톤의 명성에 비해 의외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이상 플라톤의 생애를 살펴보면 명문 귀족의 가문에서 태어나 엘리트식의 교육 과정을 받아온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만나 한 번의 전환기를 맞게 되는 것 같다.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에게 있어 자신의 철학을 고찰할 수 있는 훌륭한 본보기였다. 왜냐하면, 소크라테스의 죽음 이후, 정치가에 대한 꿈을 져버리고, 교육자, 철학자의 길로 나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명문 집안에서 편히 자라고 안정된 삶을 안위할 수 있었지만 소크라테스와의 만남 이후 새로운 사상을 알게 되고 자신의 사상을 정리하고 집대성 할 수 있었기에 수 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명성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다음으로는 앞서 말한 소크라테스와의 만남 이후 플라톤이 주장했던 사상을 살펴보면 플라톤은 변화하는 것은 참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는 것, 다시 말해 우리가 감각을 통해서 경험하는 것은 존재의 참된 모습이 아니라고 했다. 또 그는 같은 이유에서 감각을 통해 얻게 된 지식이 참 지식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언제 어디서나 동일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언제 어디서나 자기 동일성을 가진 참 존재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다는 말인가? 이데아는 위 물음에 대한 플라톤의 응답이다.

헤라틀레이토스가 끝없이 변화하는 자연에서 그 변화를 지배하는 요소, 힘 또는 원리로서 로고스(logos는 원래 말씀, 사물의 리()(도리), 계산, 비교라는 의미를 갖는 말로 고대 그리스이래 철학의 기본용어의 하나)라는 서양철학의 전통에서 중요한 개념을 찾아냈다면, 플라톤은 그 변화하는 모습의 배후에서 변화하지 않는 존재를 이데아라고 불렀다. 감각을 통해 얻는 지식은 참이 아니다. 이데아는 육안으로 볼 수 없다. 그것은 우리 얼굴에 붙어있는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있는 지성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플라톤의 주장이 의미하는 바를 풀어보면,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세계가 사실은 가짜고, 지성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이데아의 세계가 원본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이건 상식이 아니다. 일반 사람의 상식적인 의견을 전복한다. 플라톤은 이데아가 변화하는 세계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변화하는 세계에 있는 모든 존재는 변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상정한 이데아는 끝없이 변화하는 현실세계 저 너머에 있는 초월적 존재라고 봐야 한다. 시간과 공간의 질서에서 벗어나 있는 비시간적이며, 공간을 점유하지 않는 비공간적 존재다. 참 지식은 그런 것이 아니다. 변화하고 생성하는 세계가 아닌 이데아의 세계를 관조할 수 있는 지식이 참 지식이다. 플라톤은 그것을 에피스테메(episteme, 에피스테메는 육안의 눈이 아닌 지성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지식이다. 그것은 지성의 눈으로만 보이는 이데아의 세계를 그 대상으로 한다.)라고 불렀다.

플라톤이 [국가](국가(영문명: The Republic)는 플라톤의 철학과 정치학에 관한 주저로, 기원전 380년경에 소크라테스 주도의 대화체로 쓰였다. 이 저서는 철학과 정치 이론에서 광범위한 영향력을 가지며, 플라톤의 저작 중 가장 잘 알려진 책이기도 하다. 플라톤의 대화에서 주인공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다양한 아테네인과 외국인들은 올바름(正義)의 정의(定意)에 대해서 논하고, 철인(哲人) 왕과 수호자들이 다스리는 이상 사회를 그리며 정의로운 사람이 불의한 사람보다 더 행복한지 따진다. 또 이 저서는 철학자의 역할, 이데아론, 시가(詩歌)의 위상, 영혼의 불멸성에 대해 다루기도 한다.)를 쓸 당시의 아테네는 지중해 세계의 질서가 크게 요동치던 시기였다.

생각과 생각이 충돌하는 혼란스러운 시대였다. 철학의 관심이 자연세계에서 인간세계로 관심이 이동하면서 무엇이 올바른 삶이며, 무엇이 올바른 정치 체제인가 하는 관심이 크게 고조된 때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세계의 근원과 원리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생각의 깊이가 놀라울 정도로 깊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플라톤이 서양 철학의 전통이 시작되는 발원지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되는 것은, 위와 같이 여러 갈래로 흐르는 생각의 흐름을 하나의 틀로 묶어냈기 때문이다. 그 핵심 개념이 바로 이데아다. 그가 쓴 [국가]에는 그 여러 갈래의 생각들이 철학적 깊이와 문학적 향기가 함께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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