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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모어[Thomas More](1477~1535)

뉴즈'S 2021. 5. 15.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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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으로는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의 나라, 또는 이상향을 가리키는 말을 나타내는 유토피아(Utopia)에 대해서는 길을 걷다 보면 가게의 간판 등 우리에게 익숙하고 쉽게 접할 수 있던 단어이다. 이러한 유토피아는 토마스 모어의 주요 서적으로 유토피아가 집필된 이후, 존재하지 않지만 이상적인 국가 또는 행복하고 자유로운 상태를 빗대어 유토피아라고 현재까지도 사용되어 진다.

 

유토피아가 나오게 된 당시의 사회적 배경과 토마스 모어의 개인적 일대기를 살펴보면, 보통법원 판사의 둘째 아들로 런던 밀크 스트리트에서 태어난 모어는 캔터베리 대주교 겸 대법관이었던 존 모턴 집에 입주하여 생활하였고, 그의 추천으로 옥스퍼드에 입학하여 르네상스의 인문학적 교양을 쌓았다. 아버지의 요구로 중퇴하여 법률가가 되려고 링컨 법학원에 입학하였다. 링컨 법학원에 들어가 수학하면서 대학 재학 중에 대륙의 르네상스 문화운동의 영향을 받아,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를 알게 되어 평생 교유관계를 가졌다. 변호사 자격을 획득한 뒤 의회에 진출했으나, 헨리 7세의 가혹한 조세 부과를 반대하여 그 보복으로 아버지에게 벌금을 부과해 납부할 때까지 런던탑에 감금당해야만 되었다.

헨리 7세 치하에서는 출세 길이 막힌 모어인지라 수도사가 되어버릴 생각도 했지만 헨리 8세 즉위로 욍립 법학원 감독관, 이듬해에는 런던 대리집정관이 되었다. 모어에게 실력 발휘의 기회가 닥친 것은 1514년 양모 수출 금지로 야기된 영국과 네델란드, 카스틸리아 사이의 분쟁 때였다. 왕이 파견하는 특명공사 소식을 듣고 상인들은 모어를 대동해 줄 것을 요청하여 사절단에 수행한 그는 7개월 가량 머물면서 협상에 성공, 그 실력을 인정받아 승진의 길이 트였다. 사절단 수행 중 이상적 국가상을 그린 명저 유토피아를 쓰기 시작하였으며, 이듬해 귀국하여 완성하였다. 그는 탁월한 수완과 식견으로 헨리 8세의 신임을 얻어 1529년에는 대법관에 임명되었고 하원 의장을 거쳐 대법관이 되어 청빈과 공명정대한 법 집행으로 명성을 얻어가고 있을 때 헨리 8세는 이혼을 궁리하느라 분주했다. 뿐만 아니라 여러 일이 겹쳐 교황과의 사이도 껄끄럽던 터라 교황청의 이혼 승낙은 뜻밖에도 불가능해져 버렸다. 당시 대법관이 였던 토머스 모어는 왕의 이혼에 끝내 동의하지 않고 1532년 관직에서 물러났다. 1534년 반역죄로 런던탑에 갇혔다가, 1535년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뛰어난 역량을 기반과 많은 배움을 토대로 황제의 신임을 얻어 고위 관직까지 올라가게 되었지만, 황제의 이혼과 관련된 문제로 끝내 죽음까지 이어지게 된 아까운 인재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의 저서 이후에는, 달리 밝혀진 서적이 없는 점을 비추어 보았을 때, 대외 활동이나 공직에 있는 기간이 길어 저술에 힘을 못 쏟은 것 같다. 만약, 토머스 모어가 반역죄로 몰려 죽음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토머스 모어에 관한 명저들이 더욱 존재하였을 것이며, 현대에 대한 평가조차도 달라졌을 것이다.

다음으로 토머스 모어의 사상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유토피아>에 기록된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모어의 유토피아1, 2권으로 구성 되는데 당시 영국에서는 일어나고 있는 엔클로저운동에 대한 현실비판을 제 1권에 실었고, 자신이 꿈꾸는 이상세계를 제2권은 유토피아에 그려냈다. 유토피아의 저술하게 된 배경에는 토머스 모어는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카나리아 제도에서 아메리카 대륙까지를 여행한 기록 "신세계"를 깊이 관심을 가졌다. “신세계를 자주 읽었던 모어는 자연에 따라서 살고 사유재산을 가지지 않는 공동사회가 실재할 수 있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유토피아 내용 중에는 섬에는 화폐가 없고 주민들이 각자 시장에 가서 자기가 필요한 만큼의 물건들은 가져다 쓰면 된다. 집들은 모두 일률적으로 생겼고 자물쇠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주민들은 10년마다 이사를 하도록 되어있다. 그들은 모두 같이 하루에 여섯 시간의 일을 하며 2년 동안 의무적으로 농사를 지어야한다.’의 구체적 활동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이는 모든 구성원들이 똑같은 노동을 하고 똑같은 휴식을 취하고 필요한 만큼의 물건만을 가져다쓴다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1차적인 믿음이 기저에 깔려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에서 이기주의와 사적인 이익을 배제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 점이 유토피아가 현실에 적용시키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이다. 또한, 유토피아가 생성되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장 체제를 온전히 무시하여야 하며, 인간이 모두 똑같은 일을 생산할 수 있다는 기계적인 사고가 뿌리 잡혀있다. 이기주의가 빈번히 나타나고 자유주의 경제체제가 도입되었던 19세기 후반에는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를 구성하게 된 주요한 계기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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