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이슈를 소개하는 뉴즈'S 블로그

니콜로 마키아벨리[Machiavelli, Niccolo](1469~1527) 본문

인물

니콜로 마키아벨리[Machiavelli, Niccolo](1469~1527)

뉴즈'S 2021. 5. 11. 13:11
728x90
반응형
SMALL

근대 정치 철학의 창시자이자 군주론의 저서로 유명한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귀족 집안의 자제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던, 1469년에는 프랑스의 샤를 8세가 이탈리아 정복을 감행하였고, 로렌초 데메디치가 약관 21세의 나이로 피렌체를 집정하게 되었다.

귀족 집안으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라틴어, 산수, 작문 등의 교육을 받았던 마키아벨리는 1498년에 피렌체 공화정에 참여하여 주로 외교 업무를 담당하는 중책을 맡았다. 그 당시 이탈리아에는 프랑스와 독일이 끊임없이 침입하여 사회 불안이 격화되고 국가 재정이 파탄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키아벨리는 '독일 정세', '프랑스 정세', '국가 재정에 관한 진언'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 후 1512년에 스페인의 공격에 의해 피렌체 공화정이 무너지고 메디치가의 왕정이 복원되었고, 이에 따라 마키아벨리는 공직에서 추방되었다. 메디치가의 전제 시대가 시작되면서 마키아벨리는 구정권에 봉직하였다는 이유로 1년 간 억류 생활을 했다. 그 후 다시 공직에 복귀되지만, ()메디치 혐의로 다시 구속되었다.

다시 석방된 후 마키아벨리는 메디치 정부의 공직에 참여하기 위해 1513년 말경에 <군주론>을 집필했다.(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그 당시의 군주였던 메디치에게 헌정했고, '헌정사'에서 군주론을 각하께 바치며 현재 자신이 '얼마나 엄청나고 지속적인 부당한 운명의 학대를 받고 있는가.'를 알아 달라고 호소했다. 이는 군주의 신임을 얻고 다시 공직에 참여하려는 의도) 이는 그의 <리비우스론>과 함께 근대적 의미에 있어서의 정치학을 창설한 이정표이다.

<군주론>의 헌정에도 불구하고 공직을 얻지 못자, 그 후 마키아벨리는 반메디치적이고 공화주의적인 다른 지식인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전술론과 자신의 공화주의적 사상을 담은 <로마사론>(로마사 논고 내용 "조국의 안전을 다루는 곳에서는 정의나 부정의, 연민과 잔학성, 존경과 멸시가 고려될 수 없으며, 조국의 자유를 지키고 삶을 보호하는 길만이 있다"고 하였다.)을 집필하게 되었다. <군주론><로마사 논고> 두 책은 상이한 입장 차이가 드러나기도 한다.(그 이유는 이 두 가지 작업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로마사론은 일반성을 위해 기획되었으며 로마공화국의 모델에 기초한 이태리를 건설할 수 있는 대중정신을 키우고, 그 과정에서 채택된 수단으로부터 그들의 양심이 받게 될 충격을 예방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한편 군주론은 정확한 지도를 할 수 있고 이태리 통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초인의 본질에 대중이 친숙해지도록 쓰여진 저술이다. ) 그 후 메디치 왕정은 프랑스의 로마 약탈, 교황의 도주 등의 이유로 붕괴되었고 피렌체에는 공화정이 복원되었다.

그러나 공화정이 복원된 후에도 마키아벨리는 공직에 복귀하지 못했으며 결국 1527년에 세상을 떠났다. 결국 마키아벨리는 공직을 얻기 위해 <군주론>과 같은 책을 저술하지만, 이는 현재에 와서 국가에서 지도자들이 갖추어야 면모에 대해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이지 않아 말년에는 고생을 하였지만, 이러한 고생이 마키아벨리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의 정치철학과 사상을 살펴보면, 대중은 어리석고 변덕스럽다는 대전제 속에 인간 본성이 악하다는 것이 그의 평소 신념이었으며 인간 본성의 사악함과 대중의 어리석음과 변덕스러움은 오히려 강력한 통치자인 군주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 군주론의 핵심 내용이다. 군주론에서 나타난 권력의 표상으로서 군주의 모습은 마키아벨리는 인간의 절반은 이성을 가졌지만 절반은 동물적 본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성으로만 다스릴 수 없다고 확신했다.

따라서 이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것은 고매한 도덕 법칙의 당위가 아니라 힘과 권력과 지배의 기술임을 간파했다. 이러한 모습은 고대 그리스·로마 등의 역사 속의 위정자들의 권력 찬탈을 통해 그는 인간의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모습이 얼마나 위선적인지를 일깨워주었다.

마키아벨리는 겉과 속이 다르며 모순에 찬 모습이 세속적인 인간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보았다. 그는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며 이성적이라는 말을 믿지 않았다. 또한 군주에게서 도덕군자의 모습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는 군주가 갖추어야 할 덕목은 도덕적 교화가 아니라 사회를 통치할 수 있는 힘과 교활한 기술이라고 생각했다.(사자의 힘과 여우의 간지(奸智)) 이러한 마키아벨리의 사상은, 개인의 이익 추구가 자연스러워지고 개인의 욕망을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하는 근대 시민사회에서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홉스, 로크, 루소 등으로 이어지는 자연법 사상가들은 마키아벨리의 정치와 철학의 견해에 큰 영향을 받았다.

마키아벨리는 지도자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반드시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지도자가 기회를 인식하고 포착할 수 있으며 상대보다 생각이 앞서게 되고 그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운은 모든 전략전 판단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 닥쳤을 때에는 운 때문에 최대한 세밀하게 세운 계획이 완전히 뒤집어질 수도 있다.((fortuna)은 여성과 같다; (virtu, 남성)에게 복종한다.) 그러나 역량 있는 지도자는 가능성이 기회로 변하는 때를 인식하고, 경쟁자나 상대방보다 더 빨리 반응하여 행운의 이점을 활용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한다”(이 명제는 모든 목적이 아닌 정치적으로 좋은 목적을 절대적으로 전제하는 말이다. 공동체와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만 권모술수의 정치도 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좋은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좋은 수단만으로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좋은 수단만으로는 결코 좋은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냉혹하고 정직한 현실 인식은 현실에 적용해도 틀린 것이 아니다. 민중의 뜻을 배반하고 헌법에 새겨진 주권재민의 원칙을 위반하면서까지 힘 센 당이 악법들을 일방적으로 그것도 악한 방법으로 통과 시키려할때 좋은 방법으로 민의라는 좋은 목적을 지킬 수 없다. 때론 폭력으로라도 악법 통과를 저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격언에 문제가 있다면 좋은 목적, 즉 공공의 이익을 누가, 어떻게 결정할 수 있냐는 가치 판단의 문제이다. 이와 같이 현실에 적용했을 때는 추상적인 개념들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또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한다는 전제는 확장시켜 해석하면 독재 정권과 제국주의까지도 인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가 발전한 현 세기에 적용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다. 또한 마키아벨리는 공직을 얻기 위한 개인적인 욕망이 숨겨져 있어 <군주론>은 당시의 메디치가의 모습을 일부 답습하고 있다. 이는 형편성의 문제가 발생하여 마키아벨리에 대한 비판도 더러 있다.(한편,앤터리 패럴은 " 만일 마키아벨리즘에 비판과 의문이 제기된다면, 인간, 근대성 자체에 대한 의심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한가지만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를 공격한다 해도 근대성의 문제로부터 이 세계를 구할 수 없다." 고 함으로써 마키아벨리를 옹호했다.)

하지만, <군주론>의 내용 중에는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리더쉽과 자세 등에 대해 상세히 분석하여 기술하고 있다. 정치가, 한 무리의 지도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반드시 읽고 현실과 대응하여 적용하여야 할 것이다.

 

 

 

728x90
반응형
LIST